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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피아니스트로서도 탁월한 재능을 지녔던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장르의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였다. 2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포함하여 3개의 피아노 소나타, 발라드, 변주곡 등 다수의 피아노 작품을 배출하였다. 브람스 작품은 모두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고 메인 레퍼토어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1881년 3월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브람스는 빈 근교에 머물며 피아노 협주곡을 구상하였다. 여행에서의 영감으로 작곡하기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피아노 협주곡 대부분을 완성하였고, 여름 즈음 총보를 완성하여 11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었다. 그의 스승인 에두아르드 막센( Eduard Marxsen)에게 헌정하였고, 초연에는 브람스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초연 때 큰 성공을 거두었고, 유럽 전역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중요한 피아노 협주곡으로서 자리매김하였다. 많은 작곡가가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한다. 그러나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은 독주의 자기 과시적인 요소를 줄이고 독주와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대등하게 균형을 맞추고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카리스마와 테크닉을 돋보이게 하여 하나의 소리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브람스의 나이 25살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고전의 협주곡 형식인 3악장에 낭만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하지만 22년 후의 브람스 후기에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전통 3악장 형식에서 벗어나 극적인 효과를 주는 스케르초 악장을 첨가한 4악장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피아노의 과시적이지 않은 요소와 4악장의 협주곡을 만들려는 그의 시도는 2번 협주곡을 피아노 협주곡보다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형식의 작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교향악적인 요소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1악장 Allegro non troppo의 도입부는 호른과 피아노 솔로의 대화로 시작하며, 이는 리토르넬로 형식의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대화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결된다.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에 비교해 음역이 넓고, 조성이 유동적이면서도 모호하여 전통적인 형식에 낭만적인 음악 요소들로 꾸며져 있다. 2악장 Allegro appassionato는 격정적인 스케르초와 서정적인 트리오로 이루어진 악장이다. 3악장 Andante는 실내악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독주 첼로의 멜로디가 피아노로 연결되고, 피아노와 두대의 클라리넷이 앙상블을 이루다가 오보에와 독주 첼로의 캐논 풍의 대화가 느린 악장을 장식한다. 4악장 Allegro grazioso는 경쾌한 멜로디와 부드러운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여섯 개의 주요 주제들이 발전되고 변형되어 나가는 복잡한 구조와 테크닉적인 난이도를 지니고 있지만 감상하기에는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어 피날레로 안성맞춤이다. 오는 18일(일)까지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케네디센터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브람스 헝가리 무곡, 코다이 갈란타 무곡,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스트라우스의 살로메 댄스를 함께 연주한다고 하니 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따듯한 봄기운을 만끽하며 워싱턴DC 케네디 센터에 방문하여 음악회 연주를 직접 감상해보면 어떨까?   이영은/첼리스트  

2018-03-15

[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 하나의 주제를 30개 변주곡으로 표현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가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한 작품으로서, 최근에는 피아노로도 많이 연주되는 대표적인 건반 작품이다. 한 개의 아리아를 주제로 30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1741년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바로크 시대의 흔치 않은 변주곡 형식작품으로서 변주곡 장르와 형식의 가장 중요한 표본으로 다루어졌다. 이 작품은 바흐의 제자이자 건반악기 연주자였던 요한 고트리브 골드베르크(Johann Gottlieb Goldberg)를 위해 쓰였고 그가 초연하였기 때문에 골드베르그 변주곡이라고 불린다. 이 작품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바흐의 최초 전기를 작성하였던 포켈에 의하면, 18세기 초 작센의 영주였던 카이젤링크 공작이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건반악기 연주자인 골드베르크에게 잠을 청하는 음악을 써달라고 청탁하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적절한 음악이 떠오르지 않았던 골드베르그는 스승인 바흐를 찾아가 불면증을 해소할 음악에 대해 도움을 구하였다. 애제자 골드베르그를 위해 바흐가 아리아와 30곡의 변주곡으로 구성된 길고 아름다운 자장가를 써주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일화이다. 이 작품은 작곡되었을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인정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바흐의 다른 작품들이 제대로 인정을 받은 후에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조명을 받은 작품이다.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피아노로 큰 연주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고, 변주곡이라는 장르 특성과 한 시간이 넘는 작품의 길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연주자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20세기에 이르러 과거 바로크 시대의 건반악기를 복원하였고, 하프시코드를 위한 연주곡들이 발굴되었는데, 이때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도 조명받게 되었다. 20세기 대표적인 하프시코드 연주자 반다 란도프스카가 이 작품에 관심을 가졌고, 1933년 발매된 그녀의 음반은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모던 피아노로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하여 음반을 발매한 글렌 굴드는 음반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반을 발매했다. 그가 발매한 음반은 예상외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흐의 골드베르그를 발굴한 공이 글렌 굴드에게 돌아갔다.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단순한 주제의 멜로디에 리듬, 박자, 선율에 변형을 가하는 수준을 넘어 전주곡, 토카타, 춤곡, 캐논, 푸가 등 형식과 장르에 변화를 주어 심화한 변용을 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높이 평가되는 작품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30개의 변주곡을 다채롭게 표현하고, 그 하나하나의 변주곡 안에 각기 다른 특징이 도드라진다는 점도 찬사를 받는 부분이다. 또한, 이 작품의 선율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많은 이들의 편곡과 개작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세프 라인버거와 페루치오 부조니,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가 편곡과 개작을 시도했고, 재즈 분야의 자크 루세 트리오와 단 테퍼가 재즈에 맡게 편곡하여 연주하기도 하였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음악의 위안이 큰 힘이 된다. 마음이 어지럽고 힘이 들 때, 혹은 카이젤링크 공작과 같이 잠이 들기 어려울 때, 이 작품을 감상해보길 권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평안함이 느껴지는 감미로운 선율과 순수하고 청명한 피아노 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좋을 것 같다. 이영은/첼리스트

2018-02-16

[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 파기 유언에도 무명 작곡가들이 완성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 10번은 말러가 여름에 작곡하기 시작하여 지병인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는 날까지 완성하지 못하여 미완성 교향곡으로 남아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의 교향곡 중 가장 불협화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이는 심장병이 악화하고 아내의 배신에 의한 정신적인 충격이라고 많은 음악학자가 추정하고 있다. 말러가 사망하였을 때 10번 교향곡의 많은 부분이 완성된 상태였으나,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의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다. 전체적인 뼈대는 이루어져 있었지만, 부분들의 나열뿐 정돈된 형태로 모든 부분의 오케스트레이션이 마무리되어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직 1악장만 완성되어 온전히 말러의 의도대로 연주할 수 있는 정도였고 나머지 악장들은 보완이 필요했다. 말러는 자신의 미완성작을 파기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가까운 친구였던 발터와 아노르 같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러의 부인 알마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초고를 세간에 공개하고 연구를 장려하였으며, 주변에 여러 작곡가에게 부탁하였다. 그러나 아놀드 쉔베르크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벤자민 브리튼과 같은 유명 작곡가들은 모두 거절하였고, 1, 3악장을 어느 정도 완성해보려고 노력하였던 크레네크 조차도 “이 곡을 완성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말러만큼 이 곡을 소화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듯했다. 알마 자신도 10번 교향곡 완성을 포기하고 내려놓았을 때 클린턴 카펜터, 조 휠러, 데릭 쿡 등 무명 작곡가들이 보완작업을 시도하였다. 알마는 이 들의 작업을 인정하지 않다가 데릭 쿡의 초판 연주를 듣고 감동하여 1963년 이 곡의 권리와 모든 자료를 데릭 쿡에게 넘겼다. 가장 많이 연주되는 버전은 데릭 쿡의 버전이지만, 여전히 많은 작곡가가 말러의 10번 미완성 교향곡의 보완작업을 활발히 하여 새로운 버전이 나오고 있다. 데릭 쿡(Deryck Cooke, 1919~1976)은 영국 출신의 음악학자로 집중적으로 말러와 브루크너 작품 연구를 하였던 인물이다. 말러 10번 데릭 쿡의 판본은 알마 말러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버전이며, 알마가 죽기 넉 달 전인 1964년 8월 14일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온전한 형태로 런던 교향악단과 골트슈미트 지휘 아래 초연되었다. 이후에도 데릭 쿡은 지속해서 수정하고 단점을 보완하여 3판까지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신중함이 가해진 제3판이 가장 많이 연주된다. 비올라의 긴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불협화음과 반음계가 연속적으로 제시되며, 점차 긴장이 고조되어 절규하고 인생의 극한 고통과 아픔을 표현한다. 극단적으로 급변하는 분위기는 인생에서 경험하는 모든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 이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점차 느끼고 있었을 말러에게 죽음, 고통, 삶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말러의 교향곡에 대해 지난 10주간 칼럼을 연재하며 말러의 삶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또 그의 삶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철학적이고 정열적이며,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시도를 하여 많은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고 존경을 받았다. 당대 대표적인 작곡가로 손꼽히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말러. 건강의 악화와 아내의 외도,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안타까운 말년을 보냈지만, 그와 그의 음악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영은/첼리스트

2018-01-11

[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 6번 교향곡보다 먼저 작곡한 7번 ‘밤의 노래’

구스타프 말러의 10개의 교향곡 중 7번은 1904년에서 1905년 사이 작곡되었다. ‘밤의 노래(Song of the Night)’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전 악장에 걸친 제목이라기보다 2악장과 4악장의 제목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 하지만 곡 전체에 걸친 전반적인 분위기가 ‘밤’의 분위기를 연상하게 한다. 조성은 마단조라고 하기도 하지만, 말러의 앞선 교향곡 중 몇 곡도 그러하듯이 7번 교향곡 또한 조성의 틀이 모호하다. 나단조로 시작하여 마단조로 1악장이 진행되지만, 마지막 악장인 5악장은 다장조로 끝난다. 곡의 시작과 끝이 다른 조성으로 끝나는 음악적 기법을 프로그레시브 토널리티(Progressive Tonality)라고 하는데, 말러 이전에 베토벤 역시 그의 교향곡 5번에서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였다. 교향곡 7번이 작곡되던 1904년은 말러가 지휘자로서, 작곡가로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시기였다. 그는 ‘밤의 노래’ 악장인 2, 4악장을 먼저 작곡하였는데, 동시에 교향곡 6번도 함께 작곡 중이었다. 뒤이어 1905년 1, 3, 5악장을 작곡하였으나 교향곡 7번이 완성되었을 당시 아직 교향곡 6번 초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말러는 교향곡 7번의 연주를 조금 더 미뤄 1908년이 되어서야 대중에게 자신의 일곱 번째 교향곡을 들려줄 수 있었다. 초연은 프라하에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첫 반응은 좋지 않았다. “외형은 그럴듯한 효과들로 만들었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궁핍한 음악”이라는 악평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1909년 빈에서 열린 초연은 오스트리아 작곡가인 쇤베르크를 감동하게 했고, 쇤베르크는 이 작품에 얼마나 감동하였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 말러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곡을 감상하다 보면 상당히 낭만적이라고 느껴진다. ‘밤’의 분위기 자체가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관현악기의 다채로운 음색이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도와준다. 말러는 각 악기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 다양한 색채와 음색을 내려고 노력하였다. 20세기가 시작하는 무렵, 이미 낭만주의 음악은 19세기에 유행하던 음악으로 취급되었고, 점차 무조음악이 등장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말러의 교향곡 7번이 낭만주의 음악에 상당히 가깝다는 것은 말러 자신도 인정하였을 것이다. 총 5악장으로 구성된 곡은 연주시간 80분 정도. 1, 3, 5악장은 빠른 템포, ‘밤의 노래’인 2, 4악장은 느린 템포로 구성된 아치형 악장 구조다. 소나타 형식(제시부, 발전부, 그리고 재현부)인 1악장은 테너 호른의 느리고 어두운 멜로디로 곡의 문을 열고, 같은 멜로디를 트럼펫과 클라리넷이 이어 연주한다. 인트로가 끝나면 본격적인 제1 주제가 다단조 안에서 호른에 의해 연주된다. 제2 주제는 제1 주제와는 대조적으로 현악기인 바이올린이 멜로디를 리드하고 첼로가 반주역할을 한다. ‘밤의 노래 1(Nachtmusik 1)’인 2악장 역시 호른으로 시작한다. 2악장은 밤에 거니는 모습을 나타내었는데, 말러는 2악장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데에 렘브란트의 그림 ‘야경’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 비유는 단지 2악장의 이해를 도우려고 사용한 것이지, 말러가 2악장을 통해 야경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스케르쵸, 그림자처럼으로 표기되어있는 3악장은 말 그대로 깊은 밤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음산하고 사악한 악몽 같은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다. 스케르쵸는 본디 익살스럽게 연주하라는 ‘Joke’의 의미가 있지만, 3악장은 으스스하고 음침하다. 4악장은 ‘밤의 노래 2(Nachtmusik 2)’로서 2악장보다 더 부드럽고 인간적이며 세레나데에 가까운 음악이다. 전반적으로 사랑의 빛이 묻어있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위해 무겁고 강한 소리를 내는 금관악기들은 제외했다. 주로 바이올린과 목관악기 솔로가 어우러져 따뜻한 분위기를 이끌어나간다. 마지막 5악장은 힘찬 팀파니 소리와 함께 화려한 금관악기 연주로 시작한다. 밤의 어두운 기운이 지나가고 아침 해가 밝게 뜨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분위기나 작품성으로만 보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조용한 분위기의 4악장과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의 5악장은 연결성이 비논리적이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평가들의 의견이 있다. 말러는 자신의 작품에 표제를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표제를 붙였다가 후에 삭제한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교향곡 7번만큼은 ‘밤의 노래’라는 부제를 붙였다. 말러가 그의 일곱 번째 교향곡에서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말러의 교향곡 7번을 통해 그가 들려주고자 했던 밤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리듯 상상하면서 감상한다면 더욱 흥미로운 감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효주/피아니스트

2017-12-22

[음악으로 쓰는 편지] 슬프고 심오한 사랑을 표현한 4악장 인기

이전 4개의 교향곡과는 다른 모습을 지닌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은 1901년에서 1902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표제를 지니고 있고(나중에 삭제되었으나), 가곡에서 소재를 가져왔었던 1~4번 교향곡과는 달리 오직 순수기악곡 작품으로서, 20세기로 넘어온 이 시기는 말러의 음악적 발전 단계에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3주 전 소개했던 칼럼(말러 교향곡 2번)에서 언급하였듯이 말러는 매우 신중하고 완벽하길 원하는 성격을 가졌고, 교향곡 5번 역시 초연 이후에도 끊임없는 수정 과정을 반복하였다. 1904년 쾰른에서 말러 자신의 지휘로 초연된 이후 이 곡이 연주될 때마다 새로운 수정본을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문제는 출판업자의 입장이었다. 당시 악보는 금속판형을 만들어 악보를 찍어내는 방식으로 인쇄되고 출판되었는데, 매번 다른 수정본에 맞춰 금속판형을 만들고 출판하는 일은 돈이 많이 들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하던 1901년은 여러 면에서 그에게 행복하고 인상적인 시기였다. 이 해에 교향곡 5번의 세 악장과 8곡의 가곡을 작곡하였고, 부인 알마 쉰들러를 이 때 만났기 때문이다. 애초에 말러는 이 작품을 총 4악장으로 구성하려 했지만, 쉰들러를 향한 사랑의 연애편지 같은 아다지에토 (Adagietto) 악장을 작곡하였다. 아다지에토는 4악장이 되었고, 마지막 악장인 5악장과 주제 면에서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5악장은 1902년에 작곡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교향곡 5번의 총 연주시간은 70분이다. 말러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교해 긴 연주 시간은 아니지만, 여전히 다른 작곡가의 일반적인 교향곡에 비교하면 긴 편이다. 1악장은 올림다단조인데, 말러는 올림다단조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각 악장은 모두 다른 조성으로 작곡되어있다. 말러는 이 작품을 각 악장의 연계성에 따라 총 3개의 큰 부분으로 나누었다. 제1부는 1, 2악장, 제2부는 3악장, 그리고 마지막 제3부는 4,5악장으로 나눈다.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하는 1악장은 제1부의 전주라고 할 수 있고, 길이도 여느 1악장들보다 짧다. 가단조의 2악장은 본격적인 제1부의 실질적인 1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첫 버전의 악보에는 제시부에 반복표시까지 적혀있고, 말러 자신도 자필 악보에 ‘주 악장(Hauptsatz)’라고 표시하였다. 1악장과 2악장은 리듬 측면에서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2악장의 제 2주제는 1악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라장조인 3악장은 스케르쵸 악장이다. 보통의 교향곡들 역시 3악장이 대부분 스케르쵸 악장인데, 말러 교향곡 5번의 3악장이 조금 다른 점은 이 악장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대부분 교향곡의 스케르쵸 악장들은 길이가 짧고 지나가는 가벼운 악장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스케르쵸는 5개 악장 중 길이도 가장 길고, 크게 나누어 보았을 때에도 제2부에 혼자 있을 만큼 비중이 크다. 전형적인 스케르쵸가 아닌 소나타 형식과 결합한 형태로서 제시부-트리오1-제시부의 재현-트리오2- 발전부- 재현부- 코다 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러한 진행 속에 주제들이 다양하게 발전되고 변형된다. 이 3악장에는 호른의 독주파트가 있는데, 독주부분은 오케스트라의 호른연주자가 앉아서 연주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리에 서서 연주하거나 협연자처럼 무대 앞부분으로 나와 지휘자 옆에서 서서 연주하기도 한다. 서서 연주하라는 지시는 말러에 의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말러가 이 부분을 Corno Obligato (Horn Obligato)라고 직접 명시하였기 때문에 당시 지휘자 멩겔베르크를 포함한 많은 지휘자가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호른연주자가 협연자의 느낌으로 독주파트를 연주하도록 하였다. (Obligato: 작곡가가 직접 표기한 악기와 악보 그대로 어떠한 변화나 삭제 없이 연주하라는 뜻). 마지막으로 제3부에 속하는 4, 5악장 역시 1, 2악장과 비슷하게 4악장이 마치 전주의 느낌을 주고 5악장이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4악장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알마 쉰들러를 향한 말러의 사랑을 노래한 악장이다. 이 악장은 말러의 모든 교향곡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이 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 곡은 사랑을 노래한 음악이라고 하기엔 어떤 면에서는 조금 심오하고 슬프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들은 이 악장을 존재의 슬픔을 그린 음악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그녀를 향한 사랑이 쉽게 깨져버릴 것만 같은 안타까운 아름다움이 묻어있는 음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지막 악장인 5악장은 4악장과는 대조적으로 빠른 템포 안에서 밝고 화려한 피날레이다. 금관악기의 팡파르가 피날레에 등장하면서 환희에 가득찬 화려함으로 곡을 마무리한다. 1901년 이후에도 말러는 가곡을 작곡하였지만, 이전과 비교하였을 때 가곡보다는 순수기악곡에 집중하였다. 물론 그의 교향곡 8번은 합창교향곡이지만, 8번을 제외한 교향곡 5번부터 미완성 교향곡 10번까지 곡들은 말러의 기악곡 성격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지난 몇 주간의 칼럼에서 말러의 총 10개 교향곡 중 절반을 소개했는데, 앞으로 남은 여정도 함께하길 기대해본다. 이효주/피아니스트

2017-12-07

[음악으로 쓰는 편지]독일 민요서 영감 얻어 ‘천상의 삶’ 노래

말러가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을 즈음, 그는 19세기의 독일 민요시집을 발견했다.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 』라는 시집이었는데, 그 민요시집에 심취했던 말러는 그 후 12년 동안 그 시집에서 발췌한 여러 편의 시를 소재로 작곡을 하게 된다. 그 당시 작곡했던 그의 교향곡들도 시집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말러는 네 번째 교향곡(사장조)을 1899년에 작곡하기 시작하여 1900년에 완성하였다. 1885년부터 1900년 사이에 말러가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시집에서 가사를 따서 성악곡들을 작곡하였고, 교향곡을 작곡할 때 본인의 성악곡들에서 멜로디를 가져다가 사용하기도 하였다. 4번 교향곡 역시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의 가사가 붙여진 노래 중 한 곡을 바탕으로 작곡되었는데, ‘천상의 삶(Das himmlische Leben)’이라는 노래이다. 말러에게 천상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말러는 4번 교향곡 작곡 후 규모가 장대한 교향곡 1, 2, 3번과는 달리 길이도 짧고 곡의 분위기도 난해하지 않아서 비로소 청중들에게 호평을 받을 것이라 기대했었다고 한다. 무거운 느낌의 트롬본과 튜바를 사용하지 않고, 팀파니의 사용도 자제하였다. 그러나 1901년 11월 25일 뮌헨 초연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말러다움에 익숙해졌던 청중들은 시끄럽고 요란한 작품을 기대했었는지 크게 실망하였고, 심지어 4악장을 연주할 때는 야유가 나왔다고 한다. 또한, 평론가들도 4번 교향곡의 음악을 인정해주지 않고 악평을 쏟아냈다고 한다. 이 작품은 4악장으로 기존의 고전형식 구조를 따르고 있다.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진 1악장은 플루트와 방울 소리로 시작한다. 벨 주제와 제2 주제인 천국의 주제가 발전하고 결합하여 작품을 이룬다. 스케르초-트리오-스케르초-트리오-코다의 구조로 구성되어있는 2악장은 ‘죽음의 춤’이라는 닉네임이 붙여진 악장이다. 솔로 바이올린 부분을 한음 높게 조율한 것으로 보아도 이 악장의 죽음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3악장은 변주곡 형식의 느린 악장이다. 말러의 느린 악장들은 워낙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특히나 4, 5, 6번 교향곡의 느린 악장은 대중 등에게도 알려져 있을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두 개의 주제가 대비되며 나타나는데 ‘지상의 삶’과 ‘천국의 삶’을 의미한 것이라고 한다. 4악장은 소프라노가 등장하여 기악만으로 표현했던 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1900년 당시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치 천국의 삶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움이라는 평이 아주 적절하다. 20세기 초에 주류를 이루었던 신고전주의의 영향으로 비교적 고전적인 양식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어떤 부분은 슈베르트의 느낌으로, 또 어떤 부분은 보헤미안의 민요풍의 멜로디로 구성되어있어 말러의 음악 중에 대중들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향곡이다. 말러의 음악은 늦가을 날씨와 매우 잘 어울린다. 지난 몇 주간 소개되었던 말러의 1, 2 교향곡들과 어떤 부분이 비슷하고 또 어떤 부분이 색다른지 느껴보며 감상하길 바란다. 이영은/첼리스트

2017-11-30

[음악으로 쓰는 편지]말러가 이야기하는 세계-3번 교향곡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3번 라단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교향곡의 형태와는 아주 다르다. 총 6악장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작품은 악장의 수 만큼이나 연주시간도 100분이 될 정도로 길며, 그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긴 곡이다. 말러는 1893년에서 1896년 사이에 이 곡을 작곡하였다. 처음에는 1895년에서 1896년 사이에 그의 여름 휴양지인 슈타인바흐에서 이 작품이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말러의 자필 스케치 중 1악장의 행진곡풍의 멜로디 부분에 ‘1893년 슈타인바흐’라고 적혀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교향곡 2번 ‘부활’을 작곡할 당시부터 그가 교향곡 3번에 대해 구상하기 시작하였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심포니 3번은 총 2개의 큰 파트로 나눌 수가 있는데, 1악장이 첫 번째 파트이고 나머지 5개의 악장이 두 번째 파트이다. 각 악장은 캐릭터 또는 템포 표기와 함께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30분이 넘는 1악장은 ‘Kraaftig. Entschieden’(힘차고 단호하게)라는 표기와 함께 ‘Pan Awakes, Summer Marches In(목신이 잠을 깨우고 여름이 행진해 온다)’ 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호른의 팡파르로 여름이 깨어남을 상징하는 1악장의 시작은 교향곡 3번의 긴 여정을 연다. 팡파르 이후 조용한 멜로디와 리듬이 연주되고, 그 후에는 발전부라고 볼 수 있는 현악기들의 새로운 행진곡 리듬이 등장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갑자기 등장하였다가 사라지는 행진 리듬, 그리고 발전부와 재현부의 뚜렷하지 않은 경계는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의 교향곡 1악장이라고 하기에 어려움이 있으며, 어떻게 들으면 조금 난해하고 정신이 사납다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2악장은 ‘Tempo di Menuetto, Sehr maßig’(매우 적당하게)로 연주하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What the Flowers in the Meadow Tell Me (목장의 꽃이 내게 들려주는 것)’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템포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미뉴엣 풍의 4분의 3박자의 음악 안에서 꽃이 피어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말러는 그저 가만히 피어있는 꽃의 모습만 묘사하기보다는, 바람과 햇살에 변화하는 꽃의 다양한 모습을 음악에 담으려 노력하였다. 뒤이어 나오는 ‘What the Animals in the Forest Tell Me(숲의 동물들이 내게 들려주는 것)’ 부제를 가진 3악장은 ‘Comodo, Ohne Hast’(경쾌하게, 서두르지 말고)의 캐릭터로 연주된다. 3악장의 주 멜로디는 말러의 가곡 ‘여름의 끝’에서 가져온 멜로디이다. 4분의 2박자의 경쾌한 부분과 8분의 6박자의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트리오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알토의 독창이 등장하는 4악장의 부제는 ‘What Man Tells Me(인류가 내게 들려주는 것)’이다. 알토 독창은 “O Mensch! Gib acht!(O man! Take heed!, 오 인간이여! 조심하라!)”를 부르는데, 이 가사는 니체의 ‘Also sprach Zarathustra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제4부 ‘밤의 노래’에서 가져온 것이다. 말러는 세계가 잠든 깊은 밤에 대한 내용의 가사를 가진 느린 템포의 4악장에 맞는 무겁고 차분한 분위기를 위해 알토가 노래하게 하였다. 4악장과는 대조되는 ‘Lustig im Tempo und keck im Ausdruck’(활발한 속도로 대담하게)의 5악장은 ‘What the Angels Tell Me(천사가 내게 들려주는 것)’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벨 소리와 합창단이 함께 천사의 목소리가 얘기하는 듯한 느낌으로 5악장을 시작하고, 그와 함께 알토 솔리스트가 노래한다. 100분간의 긴 교향곡의 여정은 느리고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Langsam-Ruhevoll-Empfunden’(느리고 평온하게 감정을 풍부히) 연주하도록 표기되어있는 6악장은 ‘What Love Tells Me(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말러는 이 작품을 통해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고, 그 마지막은 사랑이라고 생각했기에 마지막 악장을 사랑의 내용으로 정하였다. 사랑의 슬픔과 기쁨을 모두 담고 있는 6악장의 멜로디는 청중들이 듣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작곡되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말러는 교향곡 3번을 통해 꽃, 동물, 인간, 천사, 그리고 사랑 모두를 담은 세계 전체를 들려주고 싶었고, 그렇기에 6악장 그리고 100분이라는 긴 연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지휘자, 오케스트라, 그리고 청중 모두 이렇게 긴 작품을 연주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말러가 얘기하고자 하는 세계를 생각하면서 각 악장마다의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면 흥미롭고 한편으로는 심오한 연주와 감상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효주/피아니스트

2017-11-30

[음악으로 쓰는 편지]‘부활’, 죽음에 대한 작곡가의 고찰 담아

구스타프 말러는 매우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한 가지의 결함도 없을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수정하여 한 작품을 완성하였다. 여러 색의 색연필로 수정된 흔적이 가득한 그의 자필 원본 악보를 보면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부활(Resurrection)’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말러의 두 번째 교향곡은 1894년 완성되었다. 그의 교향곡 중에 가장 복잡하고 긴 작곡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된 작품이며, 10개의 말러 심포니 모두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2번 교향곡은 3번과 8번 교향곡과 함께 말러의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시작은 1888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러는 그즈음 칼 마리아 베버의 미완성 오페라 ‘세 사람의 핀토(The Three Pintos)’를 완성하여 공연하였고, 그로 인해 큰 호평을 받았다. 공연에서 받은 수많은 꽃다발을 자신의 방에 가득 진열하였고, 어느 날 꽃들에 둘러싸인 침대에 자신이 죽어있는 꿈을 꾼 후 영감을 얻어 작곡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무렵 말러는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끊임 없는 질문을 던졌던 30대 청년이었다. 말러의 처음 의도는 교향곡을 작곡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장례와 관련된 교향시를 작곡하려고 했었다. 1891년 ‘장례식’이라는 단일악장의 교향시를 출판하려고 했던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1893년 말러는 출판하려 했던 교향시 ‘장례식’과 그동안 담아두었던 스케치들을 기반으로 부활 교향곡 작곡에 착수하게 된다. 1894년 완성한 2번 교향곡은 1895년 작곡자 본인의 지휘 아래 베를린 필이 초연하였다.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교향곡은 부활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악장부터 5악장까지 죽음에 대한 작곡가의 고찰이 담겨 있다. 이 교향곡이 1901년 드레스덴에서 연주 되었을 때, 말러가 프로그램 노트에 담았던 내용이 그것을 더욱 명확하게 한다. 프로그램 노트에 의하면, 1악장은 장례식을 의미하며, 죽음 이후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표현한다고 하였다. 2악장은 삶의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 3악장은 의미 없는 활동으로서의 삶, 4악장은 의미 없는 삶의 해방에 대한 바람, 그리고 5악장이 의미하는 것은 영원하고 초월적인 부활에 대한 열렬한 바램, 즉 말러가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진정한 주제라고 하였다. 이 작품은 수많은 관현악, 타악기로 이루어진 편성으로 규모도 엄청난 스케일이지만, 곡의 길이도 1시간 25분으로 역대급이었다. 또한, 조와 화성, 불협화음의 사용에서도 과감한 양상을 띠었음에도 불구하고 1900년대 초반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큰 성공을 이루었다. 이후 미국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으로 자리를 잡았고, 여전히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서도 꾸준히 연주되고 있다. 4악장에서 등장하는 알토의 독창과 5악장에 등장하는 소프라노, 알토, 합창의 피날레가 인상적이다. 말러는 교향곡에 독창과 합창을 사용하는 것이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상하게 할 것 같아서 조심스러웠지만, 지휘자 한스 폰 뷜로우의 장례식장에서 연주되던 프리드리히 고트리브 클롭슈톡의 시 ‘부활’의 합창에 영감을 받아 클롭슈톡의 ‘부활’의 가사로 교향곡을 완성했다. 그로 인하여 작곡가 본인이 붙인 제목은 아니지만 ‘부활’ 교향곡으로 불리게 되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삶의 이유에 대한 고찰, 그리고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말러의 선율은 삶과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영은/첼리스트

2017-11-20

[음악으로 쓰는 편지] 구스타프 말러의 심포니- 첫 번째 이야기

오스트리아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후기 낭만주의 시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교향곡 작곡가이다. 지금의 체코인 보헤미아의 칼리슈트 지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인 말러는 비엔나 음악원에서 음악공부를 한 뒤 지휘자로서의 역량을 펼친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음악적 지위인 빈 오페라의 감독으로 활동하며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작품을 지휘하였다. 지휘자의 삶이 매우 바쁜 탓에 작곡가로서의 말러의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말러는 대단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특히 총 10개의 교향곡은 그의 음악과 후기 낭만주의 음악을 나타내어주는 명 작품들이다. 그의 교향곡들은 그가 상대적으로 작곡가보다는 지휘자로 유명하였고, 또한 작곡되었을 당시 나치 독일 아래 유대인 예술가들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거의 연주되지 못하였다. 1960년 이후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에 의해 연주되면서 비로소 그 음악적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10개의 교향곡 중 첫 번째 곡인 교향곡 제1번 라장조는 1887년 말에서 1888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곡을 작곡한듯 보이지만, 말러는 이 곡의 아이디어나 모티브들을 1884년부터 생각해왔다고 전해진다. 이 곡은 1889년 초연 당시 총 5악장으로 이루어진 ‘2부로 된 교향시’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고, 1, 2악장을 제1부, 3~5악장을 제2부로 칭하였다. 1893년 함부르크에서 연주할 때에는 장 폴의 ‘거인(The Titan)’이라는 소설의 제목을 이 곡 전체의 부제로 인용하였고, 각 악장은 표제를 가지고 있었다. 장 폴의 소설 ‘거인’은 자유롭고 제멋대로이며 천재적인 주인공이 여러가지 다양한 인생 경험을 통해 원만한 성격의 인간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묘사한 소설이다.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 1번에서 치열하면서도 혈기 넘치는 20대의 청년이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장 폴의 소설 ‘거인’의 내용과 제목이 말러의 마음에 와닿았을 것이다. 그러나 함부르크에서의 연주 이후 말러는 청중들이 이 곡을 이해하는 데에 표제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소지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 이후 말러는 초연 당시의 2악장이었던 ‘블루미네(Blumine, 꽃의 노래)’와 ‘거인’이라는 제목을 포함하여 모든 악장의 표제를 없애고 총 4악장 구성의 교향곡으로 완성하여 “교향곡 1번”이라는 이름으로 1896년 베를린에서 최종완성작품을 초연하였다.이때 삭제된 이후 분실된 줄 알았던 2악장의 악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견되었다. 현재 간혹 2악장으로 삽입되어 연주하거나, ‘꽃의 장’이라는 제목의 독립적인 곡으로, 또는 교향곡 1번 전체 작품을 연주하기 전 전주곡처럼 연주하기도 한다. 말러의 교향곡 1번은 여전히 ‘거인’이라는 부제와 함께 연주되곤 한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은 말러의 음악을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적합한 작품이다. 가슴을 벅차게 해주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 스타일, 그리고 말러가 얘기하고자 하는 스토리들을 상당히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앞으로 이영은 첼리스트와 격주로 말러의 10개 교향곡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말러의 음악과 그 안에서의 변화들을 함께 알아가 보는 쏠쏠한 재미를 느끼기를 기대해본다. 이효주/피아니스트

2017-11-09

[음악으로 쓰는 편지] 베토벤의 현악4중주

음악가로서 가장 중요한 능력인 청력을 잃었지만,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만을 사랑했던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악성(樂聖) 즉, 음악의 성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그의 음악은 음악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녔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3번 에로이카 심포니, 5번 운명, 9번 합창을 포함한 9개의 교향곡뿐 아니라,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5개의 피아노 협주곡, 5개의 첼로 소나타, 9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7개의 피아노 삼중주와 5개의 현악삼중주 등 굵직한 대작을 배출하며 기존에 있던 다양한 장르에 큰 도약을 가져왔으며,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그의 대표 장르였던 16개의 현악4중주 작품들은 고전 양식부터 낭만 양식까지 베토벤의 초기, 중기, 후기의 음악세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아름다운 선율과 얽혀있는 모티브의 소리, 각 악기의 음색 등 그 전에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보이며 발전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음악사적으로도 의미를 지니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다. 현악4중주라는 장르는 1750년 경 요세프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에 의해 확립되었다. 현악합주의 축소판인 현악4중주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확실한 역할 분담으로 작곡가들에게 음악세계를 펼치기에 아주 적절한 편성이었을 것이다. 하이든 이전에 4중주의 편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를 위한 68개의 현악4중주를 작곡하고, 곡의 형식과 구조의 기틀을 잡아 현악4중주를 한 장르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하이든이었다. 하이든의 뒤를 이어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가 23개의 현악4중주를 작곡하여 고전양식의 현악4중주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이 가장 대중적이던 시절, 젊은 베토벤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부터 고전시대까지의 음악을 공부하며 본인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교향곡에 관심이 많았던 베토벤에게도 역시 현악4중주라는 편성은 압도적으로 매력적이었고, 언제나 새로운 것, 흥미로운 것을 추구했던 베토벤에게 하이든과 모차르트와는 다른 현악4중주를 작곡하는 것은 고민스러운 숙제였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베토벤의 현악4중주는 4성의 역할이 뚜렷하기 보다는 서로 긴밀히 얽혀 주고받는 경향이 있으며, 주로 베이스 역할만 했던 첼로에게 멜로디를 동등하게 부여하여 더 다채롭고 조화로운 4중주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초기의 현악4중주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짙은 모습이다. 간결한 선율과 심플한 화성 진행, 예상되는 전개로 흘러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의 중기 작품인 현악4중주부터는 베토벤의 특색이 조금 더 많이 드러나게 된다. 급격한 화성변화, 다이나믹과 무드 변화, 간결한 모티브로부터 발전한 악구, 대위적 진행 등 그만의 색다른 요소들과 기존의 고전양식이 섞여 구성되어 있다. 그의 후기 현악4중주는 혁신적인 변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고전 현악4중주의 기본 틀에서 벗어나 연속적인 푸가 진행, 예상되지 않은 전조 등 음악 내부에서의 변화 뿐 아니라, 소나타 폼의 변형, 4악장 이상의 형식 등 전체 구조적인 변화로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추구했다. 그의 16개의 현악4중주 중 Opus 18번의 여섯 곡은 초기에, Opus 59, 74, 95인 5곡은 중기에, Opus 127, 130, 131, 132, 135인 다섯 곡은 후기에 작곡되었기 때문에 베토벤의 음악양식이 시기 별로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보여주고, 그것들을 통하여 고전양식에서 낭만양식으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알 수 있다. 시기별로 다양한 베토벤의 음악적 스타일을 생각하며 그의 현악4중주를 듣는 것도 좋은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영은/첼리스트

2017-10-20

[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 피아노의 왕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의 왕이라 불리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는 19세기 피아노 역사뿐 아니라 서양음악의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리스트가 엄청난 피아니스트였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에게는 불가능한 피아노 테크닉이 없었다고 하며, 음악적인 표현력 또한 매우 뛰어났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피아니스트인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고,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더욱 어렵고 화려한 기교를 요구하는 작품을 작곡하고 직접 연주하였다. 리스트는 또한 현재의 피아노 솔로 리사이틀의 형태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여러 음악가가 함께 출연하는 음악회가 일반적이었는데, 그는 후원자와 다른 동료 음악가의 도움이 없이 혼자 연주 생활을 하길 원하였다. 현재 우리가 피아노 독주회에서 보는 옆으로 놓인 피아노의 위치 즉 청중들이 피아니스트의 옆모습을 보도록 하고, 피아노 뚜껑에 반사된 소리가 청중을 향해 가도록 하는 것은 리스트의 연주회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리스트는 모든 작품을 100% 암보로 연주하였고, 그것 또한 그 후의 피아니스트들이 독주회에서 모든 피아노 솔로곡을 암보로 연주하게 되는 시작이었다. 리스트의 연주는 환상적이었고,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지금으로 치면 한류스타들의 인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리스트를 얘기하려면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시대에 피아노의 왕이 리스트였다면,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왕이었다. 그의 화려한 기교와 음악으로 가득 찬 연주는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리스트는 파가니니와 같은 테크닉을 가지기 위해 피아노 연습에 매진하였으며, 그러한 기교를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작곡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곡이 바로 ‘라 캄파넬라 (La Campanella)’이다. ‘라 캄파넬라’ 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종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리스트의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집’에 들어있는 여섯 개의 연습곡 중 3번째 곡이다.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나단조의 3악장 멜로디를 모티브로 하여 ‘라 캄파넬라’ 를 작곡하였다. 이 곡이 작곡되었을 당시 너무나 어려운 테크닉으로 인해 리스트 이외에 어느 사람도 연주할 수 없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이 곡은 러시안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 한국인 피아니스트 손열음 등 유명 피아니스트의 단골 앙코르 곡으로도 유명하다. 종이 울리는 소리를 연상하는 모티브는 더욱 어려운 테크닉을 추가하며 변주 형식으로 등장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하나 쉬운 테크닉을 찾기가 어려운 곡으로서 피아니스트에게는 굉장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곡인 만큼 그 연주 효과도 대단하다. 라 캄파넬라뿐 아니라 이 곡이 속해있는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집’ 은 리스트가 원하는 기교와 음악성이 아주 잘 녹아있다. 쇼팽이 그의 24곡의 연습곡을 통해 테크닉뿐 아니라 깊은 음악까지 잘 표현해냈다면, 리스트는 쇼팽과 비교하면 어쩌면 테크닉에 더 치중을 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리스트는 그 안에서 분명히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음악을 담아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어렵고 화려한 테크닉에 압도당해 미처 그 안에 담긴 음악을 좀 더 깊게 생각하기 어려워서일지도 모르겠다. 라 캄파넬라 외 5곡으로 이루어진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집’ 을 들으며 리스트의 화려한 기교와 음악을 감상해보자. 이효주/피아니스트

2017-09-29

[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웅장한 규모…오페라 중의 오페라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로서 나부코, 맥베스,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오텔로, 아이다 등을 작곡하여, 로맨틱 이탈리아 오페라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작곡가이다. 그는 60년 동안 작곡가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완성했고,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의 메인 레퍼토어이며, 그의 수많은 아리아는 다채롭고 아름답기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 후기작품인 ‘아이다(Aida)’는 모든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다.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이집트의 국왕 이스마일 파샤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이탈리아 극장’이라는 컨셉으로 극장을 세웠다. 또한 나라의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극장에서 새로운 오페라를 상연하기로 하고,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였던 베르디에게 오페라 작곡을 의뢰하였다. 베르디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두 차례나 거절했지만 대본의 줄거리에 마음이 움직여 작곡하게 되었으며, 당시로서는 유례없는 거액의 작곡료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다의 대본은 프랑스 이집트 고고학자인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카미유 뒤 로클이 프랑스어로 대본을 작성하였고, 이것을 근거로 안토니오 기슬란토니가 이탈리아어 대본을 작성하였다. 아이다는 1871년 완성되었고, 그해 12월 24일 카이로의 커디비알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됐다. 유럽에서의 초연은 이듬해인 1872년 2월8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라 스칼라 극장에서 성황리에 막이 올려졌다. 이 작품은 이집트와 누비아의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를 시대적 배경으로, 이집트 군대의 사령관인 라다메스와 이웃 나라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아이다는 이집트에 끌려와 노예가 되었으나, 반항하는 아이다를 보고 매력에 사로잡혀 사랑에 빠진 라다메스는 그녀를 향한 마음과 파라오를 향한 충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또한, 라다메스를 사모하는 파라오의 딸인 암네리스 때문에 더욱 복잡한 러브라인을 형성한다. 에티오피아가 전쟁에서 패한 후, 암네리스가 이집트에 숨어있던 아이다의 아버지, 에티오피아의 왕에게 도망치는 루트를 알려주었고, 이 때문에 라다메스는 반역죄로 체포된다. 라다메스를 사랑했던 암네리스는 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만, 그는 아이다를 위해 항변하지 않고 묵묵히 컴컴한 석실에 산채로 갇혀 죽게 되는 벌을 받는다. 라다메스와 마지막까지 함께 하길 원했던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석실에서 만나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이 이 작품의 결말이다. 작품의 배경은 고대 파라오 시절의 이집트 왕궁과 신전이며, 출연진만 수백 명에 이른다. 화려한 고대 이집트 의상과 웅장한 무대 연출로 오페라 공연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아이다 공연을 접할 기회가 흔히 있는 것은 아니다. 2017~2018시즌의 막이 열렸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케네디 센터의 시즌 첫 오페라로 지난 9일부터 23일까지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단이 아이다를 공연하고 있다. 하늘이 높고 아름다운 9월, 사랑하는 사람들과 워싱턴 DC를 방문하여 아름다운 아리아로 구성된 오페라 아이다를 감상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이영은/첼리스트

2017-09-15

[음악으로 쓰는 편지]쇼팽 음악의 또 다른 매력, 24개 전주곡 작품번호 28번

 프레데릭 쇼팽(1810~1849)은 1835년부터 1839년까지 4년에 걸쳐 24개의 프렐류드 작품번호 28번(24 Preludes, Op. 28)을 작곡하였다. 프렐류드는 전주곡이라는 뜻으로 본디 메인 곡이 연주되기 전에 전주로서의 역할로 연주되는 곡이다. 하지만 쇼팽이 그 전형적인 전주곡의 형식을 깼다. 전주곡만으로 이루어진 24개 세트의 작품을 작곡한 것이다. 짧은 길이의 24개 전주곡은 각자 독립적인 음악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쇼팽은 24개의 전주곡을 모두 다른 조성으로 작곡하였는데, 이것은 바하의 평균율(프렐류드와 푸가)과 비슷하다. 하지만 바하의 작품은 반음계의 순서에 따라 프렐류드와 푸가가 진행되고, 쇼팽의 작품은 푸가가 없으며 프렐류드들은 완전 5도의 순서와 관계 장조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바하의 프렐류드와 푸가 1번이 다장조, 2번이 다단조, 3번이 올림 다장조, 그리고 4번이 올림 다단조의 조성순으로 진행되는 반면, 쇼팽의 전주곡은 1번이 다장조, 2번이 나단조, 3번이 사장조, 그리고 4번이 마단조이다. 쇼팽의 24개 전주곡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이 곡은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각 전주곡이 무엇인가를 느끼기에는 그 길이가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음악은 결국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고, 현재 피아노뿐 아니라 다양한 악기가 연주하는 명작이 되었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자신의 별명에 걸맞게 24개의 전주곡에서 역시 시적이고 섬세한 감각을 드러냈다. 그는 각 전주곡에 특정 제목을 붙이지 않았지만, 몇 개의 전주곡들은 그 특성에 맞게 훗날 사람들에 의해 제목이 붙었다. 그 중의 가장 유명한 곡은 전주곡 15번 ‘빗방울’이다. 쇼팽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영감을 얻어 이 곡을 작곡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고, 또한 이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등장하는 팔분음표의 라플랫 (Ab) -때로는 솔샾(G#) - 음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연상하게 한다고 하여 이 곡의 부제가 ‘빗방울’로 붙여진 것이다. 24개의 전주곡은 각각의 개성이 강하고 그만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24개를 연속으로 연주하고 들을 때에는 또 다른 커다란 스케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연주자, 청중 모두에게 쇼팽의 음악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는 곡으로서 전혀 지루하지 않고 다양한 들을 거리를 주는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작품번호 28번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자.

2017-09-08

[음악으로 쓰는 편지]사계(Four Seasons)

긴 여름이 지나고 한풀 더위가 꺾였다. 아침저녁으로는 살랑한 바람이 불고, 낮에는 높고 푸른 하늘을 보여주고 있어서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가을의 선선함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급작스럽게 추운 날씨로 이어질까 걱정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날씨 변화는 작곡가들에게도 좋은 작곡 소재였다. 계절에 대한 음악은 바로크 시대부터 20세기까지 끊임없는 작곡의 소재였고, 청중들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만한 소리로 표현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오늘은 그런 계절에 대한 대표적인 곡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바로크 시대에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가 1725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Four Seasons Op.8 No.1-4)는 여러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에 의해 연주되었다. 이 곡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묶어놓은 곡으로 주로 사계 모두 한 번에 연주되며, 각 곡은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발디의 음악은 바하와 헨델과 같은 시대의 작곡되었지만, 바하의 음악처럼 무겁지 않고 비교적 단순한 구조와 반복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사계는 이러한 비발디 음악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화려하고 기교적인 바이올린의 선율이 귀를 사로잡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연주로 귀에 익숙한 클래식 음악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봄의 싱그러움, 여름의 요동치는 더위와 바람, 가을의 수확의 기쁨, 얼어붙을 듯한 차가운 겨울의 묘사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가 1876년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성격적 소품 ‘사계’(The Seasons) Op.37을 완성하였다. 생 페테르부르크 음악잡지의 에디터였던 베르나드(Nikolay Matveyevich Bernard)의 커미션을 받아 1년의 각 12개의 달에 따른 캐릭터 피스를 작곡하게 된다. 각 악장에 소제목을 붙이는 것도 베르나드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12개의 악장은 1월부터 12월까지 캐릭터를 따라 각각 다른 무드를 표현하고 있으며, 12악장이 한 세트로 연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앙코르로 따로 연주되는 경우도 많다. 11월 트로이카는 라흐마니노프의 앙코르로 자주 연주되었고, 6월 뱃노래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독립적으로 자주 연주되는 악장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는 일반 대중이나 연주자뿐 아니라 작곡가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많은 작곡가가 사계를 바탕으로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또는 투 피아노 버전 등 다른 편성으로 편곡하였다. 원곡과 편곡된 곡들도 영화 <올드보이>나 <더 베어> 등의 영화음악으로 삽입될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다. 사계절이 주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기온이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과는 다르다.각 계절에 따른 냄새가 있으며, 청각적, 시각적으로 다양한 풍경을 누릴 수 있다. 계절과 날씨에 따른 감성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작곡가와 연주자에게 매력적인 소재였음은 확실하다. 또한, 사람마다 계절에 대한 느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더욱더 흥미로운 소재였을 것이다. 요번 주말에는 비발디와 차이콥스키의 사계를 들으며 계절에 대한 그들의 감성은 어떤 것이었는지, 나와의 느낌과는 어떻게 다른지 느끼며 감상하길 바란다.

2017-09-01

[음악으로 쓰는 편지]20세기 후반 프랑스 작곡가, 앙리 듀띠유

 라벨, 데뷔시, 메시앙과 같은 20세기 초 프랑스 작곡가들의 뒤를 잇는 앙리 듀띠유(Henri Dutilleux, 1916~2013)는 20세기 후반 프랑스의 주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작곡은 신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였고 끊임없는 수정과정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으며, 그중에서도 그가 선택한 몇몇 작품만을 출판하였다. 듀띠유는 위에 언급한 프랑스 작곡가들의 스타일을 이어갔고, 또한 스트라빈스키와 바르톡의 영향도 받았다. 동시에, 그는 미유(Darius Milhaud)와 풀랑(Francis Poulenc)과 같은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음악 학파에도 속하길 원하지 않았고, 자신의 신념과 개성을 음악에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듀띠유는 피아노 솔로 작품, 교향곡, 노래, 협주곡 등 다양한 장르를 작곡하였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곡은 사실 훨씬 더 많을 수 있었겠지만 듀띠유 스스로에 의해 선택되어 출판된 피아노 솔로곡은 오직 8곡뿐이다. 8곡의 피아노 작품 중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작곡된 3개의 피아노 전주곡(Trois Preludes pour piano)은 그의 마지막 피아노 음악이다. 제목처럼 이 곡은 3개의 피아노 전주곡으로 구성되어있다. 본래 전주곡(Prelude)이라 하면 본격적인 음악이 나오기 전에 흘러나오는 곡으로, 글로 본다면 서론 같은 역할을 하는 곡이다. 하지만 쇼팽이 24개의 피아노 전주곡을 작곡하면서 많은 작곡가가 전주곡만을 엮어 만든 작품들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데뷔시,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 많은 다른 작곡가들의 피아노 전주곡을 엮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듀띠유의 3개 피아노 전주곡의 제목은 각각 이러하다. ▷D’ombre et de silence (In shadow and silence) ▷Sur un meme accord (On one chord) ▷Le jeu des contraires (The game of opposites) 첫 번째 전주곡은 1970년대 초반부터 작곡되었다. 이 곡은 인상주의 사조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희미한 안개 속에서 흐르는 음악처럼 모호한 화성과 뒤섞인듯하지만, 그 안에 선명함을 드러내는 음색이 특징이다. 두 번째 전주곡은 화성, 리듬, 그리고 다양한 테크닉의 측면에서 첫 번째 곡보다는 훨씬 현대적이다. 이 곡의 제목은 ‘On one chord’ 인데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하나의 화성으로 시작하여, 그 화성이 곡의 중간마다 계속 등장하고, 결국 끝맺음도 이 화성과 함께하게 된다. 이러한 기법들이 이 곡을 더욱 실험적으로 만들어준다. 마지막 전주곡은 1988년에 작곡되었으며, 3개의 전주곡 중 길이가 가장 길다.이 곡은 화성, 음향, 리듬, 다양한 기법 등 그의 음악적 아이디어가 모두 들어있다. 듀띠유의 ‘3개의 개의 피아노 전주곡’은 그의 마지막 피아노 작품인 만큼 듀띠유의 음악적 세계관을 모두 담은 듯하게 들린다. 이 곡은 처음 들었을 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난해하다. 귀에 익숙한 하모니와 박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작곡 스타일과 각 작품의 제목을 연관 지어 여러 번 듣다 보면 조금씩 듀띠유의 음악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듀띠유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현대 작곡가들의 곡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많은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에 귀 기울여보고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며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클래식 음악의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2017-08-25

[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 프랑스 낭만주의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 1845~1924). 클래식 음악 전공자 혹은 애호가에게는 익숙한 작곡가이지만, 그렇지않은 대중에게는 베토벤, 쇼팽처럼 흔히 들어본 작곡가는 아닐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포레는 프랑스 남부 파미에르에서 태어난 프랑스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클래식 음악의 대표작곡가이다. 그의 음악은 20세기의 프랑스 작곡가들(예를 들면 데뷔시, 라벨)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은 어릴 때 발견되었다. 그는 9살이 되던 해에 파리에 있는 교회음악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오르간을 배웠고, 그 외에 피아노, 화성학, 대위법 등의 부분에서 수석으로 졸업하게 된다. 그 후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취업하고, 그 후에는 합창 지휘자로 일하며 꽤 성공적인 중년의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오르가니스트와 합창 지휘자로서의 일이 너무 바빠 작곡에는 한참 동안 소홀하기도 하였지만, 그런데도 조금씩 작곡 활동을 하며, 그의 음악을 자신의 곡에 표현하고자 했다. 이 시기에 작곡된 곡 중 한 곡이 피아노 사중주 1번 작품번호 15번 다단조이다. 포레는 1876년 여름부터 이 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여 1879년에 완성하였고, 그 후 1883년에 다시 수정하였는데 피날레를 완전히 다시 작곡하였다. 원본의 피날레는 현재 찾아볼 수 없으며 음악학자들은 포레가 스스로 자신의 말년에 이 피날레의 원본 악보를 없앴다고 추측한다. 총 4악장으로 구성된 포레의 피아노 사중주 1번은 그의 음악을 아주 잘 나타내주는 곡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앞선 작곡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포레는 모차르트의 절제된 아름다움, 쇼팽의 긴 멜로디 라인과 조성음악 안의 자유로움을 이 곡에서 녹여냈다. 1악장은 아름다우면서도 힘찬 느낌으로 시작하는데 이 멜로디는 브람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힘 있는 오프닝과 대조되는 섬세한 제2 주제 멜로디가 포레의 다양한 음악성을 보여준다. 2악장은 포레의 작품 중에서는 드물게 굉장한 기교를 요구하는 악장이다.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그 분위기를 받쳐주는 현악기의 피치카토 테크닉(현악기의 현을 손끝으로 튕겨서 연주하는 테크닉)이 흥미롭다. 3악장은 2악장과 아주 대조되는 느린 악장으로 슬픔이 가득 묻어있는 음악이다. 이 곡이 작곡되기 시작할 무렵, 포레가 약혼녀와 4개월 만에 파혼을 하였다고 한다. 그 슬픔이 3악장에 담겨있는 듯하다. 피날레인 4악장은 기본적으로 경쾌하고 생동감이 있는 악장으로, 그 안에 다양한 화성의 색깔과 멜로디가 들어있다. 경쾌하지만 멜로디는 슬플 때도 있고, 그러다가 밝은색의 화성이 나오며 다시금 분위기를 전환한다. 미국 작곡가 애런 코플란드는 포레의 음악을 이렇게 말했다. “포레의 음악은 초기, 중기, 말기 모두 주제, 하모니, 형식적인 면에서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각각 새 작품들이 늘 새롭고, 포레 자신을 잘 드러내며, 더욱 깊이가 있다”. 포레는 자신만의 음악 중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앞선 작곡가들의 음악적 기초를 계승하면서도 포레 이후 인상주의 작곡가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음악적인 요소 및 기법을 포레의 곡에서 미리 엿볼 수 있다. 포레의 여러 곡을 들어보면서 포레의 묘한 음악적 특징을 파악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효주/피아니스트

2017-08-11

[음악으로 쓰는 편지]완벽주의 브람스의 작곡 과정

 작곡가마다 작곡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어떤 작곡가는 머릿속으로 작곡을 마친 후 악보에 옮겨 적기도 하고, 어떤 작곡가는 악보에 써넣으며 작곡하고, 수정하는 것을 반복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악상이 떠오르면 머리로 모든 작곡을 마치고 악보에 적는 경향이 있었고,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스케치해놓고 여러 생각과 수정을 반복하여 작품을 완성해서 한 곡을 완성하는 데 몇 년씩 걸리는 작곡가였다. 구스타브 말러는 여러 가지 색의 색연필로 수정한 여러 버전의 자필 악보가 보여주듯이 수차례 반복적으로 수정하는 작곡가였다.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그의 생애에 다양한 장르의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그의 작품을 작곡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첫 시도에 만족하지 않고 출판될 때까지 계속 수정하기를 반복하였다. 이는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작품이 초연된 후에도, 혹은 출판된 후에도 계속 검토를 하였고, 심지어 출판한 지 몇십 년이 지난 후에 수정해서 다시 출판한 작품도 있다. 브람스는 완성되지 않았거나, 본인이 인정할 수 없는 스케치나 초안, 그리고 수정본들을 없애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필체로 그려진 악보 중 현존하는 대부분의 악보는 수정한 흔적이 전혀 없이 깨끗하거나 출판된 악보와 같은 경우가 많으며, 오직 몇 곡들만 그가 수정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브람스의 친구이자 그의 첫 번째 전기를 집필한 막스 칼벡(Max Kalbeck, 1850~1921)의 말에 의하면, 브람스는 주기적으로 그의 스케치나 초안을 없애고, 마지막 버전만 혹은 출판된 악보만 남겨두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브람스는 왜 이토록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스케치와 초안, 수정본들을 없애고 마지막 버전만 남겨두려고 했을까?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브람스는 완벽주의적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자신의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하고, 자신의 결함은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스로 마음에도 탐탁지 않아 수정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지난주 칼럼에 언급했듯이 과거의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었던 브람스는 바로크 시대부터 낭만 시대에 이르는 모든 작곡가의 음악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고 있었으며, 그때 당시 과거의 고전주의 음악에 익숙한 청중들의 취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음악학자 친구들과 음악에 대한 토론 모임을 자주 즐겼으며, 아마도 자신의 작품들도 음악의 역사 안에서 평가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그가 의도적으로 스케치와 초안들을 남겨두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후대에 자신의 작업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될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확한 이유는 브람스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만, 이러한 브람스의 습관은 브람스의 정확한 작곡 과정을 알기 쉽지 않게 만들었으며, 후대의 많은 음악학자들이 브람스의 초안이 없이도 그의 작곡 과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브람스의 이러한 성격과 습관 덕에 그의 음악이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닐까.

2017-08-04

[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 절대음악의 계승자 요하네스 브람스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는 베토벤의 절대음악(absolute music)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작곡가로서 낭만주의 클래식 음악에 있어서 절대로 빼어놓을 수 없는 음악가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를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루드비히 반 베토벤과 함께 ‘3B’라고 칭하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브람스는 관현악곡, 피아노곡, 실내악곡 등 여러 장르의 곡을 작곡하였는데 대부분의 곡이 그가 살아있을 때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자기의 곡을 초연하기도 하였고, 지휘자로서 그의 관현악곡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그의 음악은 굉장히 견고하고 때로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절대음악의 계승자답게 작곡 기법 및 구조적인 면은 고전주의 음악을 따라가지만, 그러면서도 낭만주의 음악의 아름다운 화성 진행과 서정적인 멜로디, 마음을 울리는 음색을 들려준다. 그가 작곡한 수많은 피아노곡 중 소나타는 총 3곡이다. 그중에서도 피아노 소나타 1번 다장조는 작품번호 1번(Op.1)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사실 피아노 소나타 2번이 더 먼저 작곡되었는데, 브람스가 스스로 생각했을 때에 그때까지 작곡했던 곡 중 소나타 1번의 작품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1번을 자신의 작품번호 1번으로 정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브람스의 완벽주의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알 정도였는데, 그는 오랜 시간 작곡한 작품이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본조차 남기지 않고 버렸다고 한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는 총 3곡이 출판되었지만, 사실 더 많은 소나타가 작곡되었다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브람스와 로베르트 슈만의 인연은 이 곡이 출판되기 전부터 있었지만, 소나타 1번은 브람스가 슈만의 도움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작품이다. 슈만 덕분에 브람스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슈만의 추천으로 브람스는 그의 소나타 1번을 출판하게 되었다. 총 4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브람스의 음악적 특징을 잘 나타낸다. 대체로 브람스의 피아노곡들은 옥타브 이상의 화음들이 많아 손이 작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할 때 약간의 어려움이 있기도 한데, 이 곡 역시 웅장한 옥타브 화음들로 시작하며 브람스 음악만의 묵직함을 나타낸다. 1악장은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시작 부분의 옥타브 테마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내림 나장조 작품번호 106번 ‘함머 클라비어(Hammerklavier)’와 비슷하다. 2악장은 ‘Steal the moon(Verstohlen geht der Mond auf)’ 이라는 포크송에서 영감을 받아 변주곡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3악장은 스케르쵸 곡답게 경쾌하고 빠르고 활기찬 패시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 4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처음 등장하는 A 테마는 매번 등장할 때마다 변화가 있다. A 테마의 조성과 리듬 등의 변화가 이 곡을 마지막 순간까지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마지막 악장은 음악적, 기술적으로 굉장한 실력을 요구하기에 피아니스트에게는 도전이 되는 곡이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피아노 소나타 외에도 수많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다. 필자는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위로받을 때가 많다. 브람스의 음악은 테크닉적인 어려움과 복잡한 화성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긴 악구들 때문에 음악가들에게 그의 작품들을 공부하고 연주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그의 작품이 연주되고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아름다운 음악이 주는 감동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도 이번 주말 브람스의 음악에 촉촉히 젖어보는 건 어떨까. 이효주/피아니스트, 피바디 박사과정

2017-07-28

선우예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지난 토요일, 미국에서 권위있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 중 하나인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지난 2015년 폴란드에서 개최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더니, 이번에는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이다.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은 예전부터 뛰어난 기량과 음악성으로 전세계적으로 활동하였지만, 요즘은 그 위상이 날로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반 클라이번 재단은 1962년 텍사스에서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처음 개최했다. 반 클라이번 재단은 미국 피아니스트였던 반 클라이번(1934~2013)의 제 1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1958년) 우승 이후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텍사스 크리스찬 대학교에서 콩쿠르가 열렸지만, 2001년부터는 베이스 퍼포먼스 홀에서 4년에 한번씩 열린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우승자에게 주는 혜택이 많아 수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도전하는 대회이다. 우승자는 상금 5만불과 함께 3년동안 전세계 유명한 홀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요즘처럼 클래식 시장이 줄고 연주기회가 없는 때에 이러한 연주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클래식 연주자로서 최고의 혜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권위있는 대회이니만큼 우승으로 다가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총 290명이 맨 처음 자신의 연주 레코딩을 보내 지원을 하고, 그 중 140명만이 통과를 하여 영국, 독일, 헝가리, 러시아, 한국, 미국 등의 지역에서 준비한 곡을 연주하고, 심사위원들은 그들 중 총 30명을 뽑는다. 이 30명이 비로소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의 1차 예선에 진출하게 된다. 그 뒤엔 20명이 2차에 진출하고, 12명이 세미파이널에, 그리곤 6명이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파이널까지는 각 독주회마다 다른 곡들로 구성된 50분짜리 독주회 3번, 1곡의 챔버곡(40분), 그리고 2곡의 피아노 협주곡(각 30분- 40분)을 연주해야 한다. 총 18일에 걸쳐 진행되는 콩쿠르는 피아니스트들의 대단한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엄청난 곡들을 소화해내고 콩쿠르에서 연주해 내기까지 이들의 피와 땀이 섞인 연습과 노력은 정말 상상하기 어렵다. 피아니스트인 필자도 몇 년 전 국제 콩쿨을 준비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쉽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한 한국인으로 2009년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2005년에는 조이스 양이 2등에 입상하였다. 올 해 우승한 선우예권 외에 아깝게 파이널리스트에 올라가지 못한 피아니스트 김다솔은 존 지오르다노 심사위원이 주는 특별상을 받았다. 2017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영상은 에서 들을 수 있다. 이제는 전세계의 권위있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인의 이름은 항상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계에서 김연아, 박태환 처럼 한국인 최초의 타이틀을 달고 그들과 그 종목이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듯이, 클래식 음악에서도 한국인 최초의 타이틀을 단 연주자들과 클래식 음악이 많은 한국인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효주 / 피아니스트, 피바디 박사과정

2017-06-16

[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 음악을 사랑한 화학자 보로딘

며칠 전 클래식 라디오 채널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인상적인 현악 4중주곡을 들었다. 결혼식 축가로도 많이 연주된다고 소개된 이 곡은 첼로의 음색이 돋보이는 멜로디로 구성되어 듣는 사람에게 따스함이 느껴지는 봄 날씨 같은 음악이었다. 이 작품은 러시안 작곡가 알렉산더 보로딘(Alexander Borodin, 1833~1887)이 1881년에 작곡한 현악 4중주 2번 D 장조로 러시아의 색채가 짙다. 보로딘은 1833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조지아 출신의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모든 분야에 있어 집에서 개인 교사를 두어 교육을 받았고, 9살 때부터 피아노, 플루트, 첼로 등의 악기 교습을 받았다. 9세에 폴카를 작곡, 13세에 플루트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하였지만, 그는 화학을 전공으로 정하였다. 185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의과대학에서 화학과 의학을 전공한 후,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해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떠난다. 1862년 공부를 마친 후 모교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여 수많은 논문을 제출하는 등 화학자로서의 커리어를 확고히 다지며 화학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보로딘은 1862년 교수로 재직하던 중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1837~1910)를 만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보로딘은 발라키레프에게 작곡레슨을 받게 된다. 보로딘은 발라키레프의 도움으로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였고, 1869년 그의 나이 36세에 그의 첫 작품인 교향곡 1번이 연주되었다. 초연이 호평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1887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교향곡 1, 2번, 현악 4중주 1, 2번, 피아노 3중주, 피아노 소품 외 여러 작품을 배출하였다. 교향곡 3번과 오페라 ‘이고르 공’은 미완성으로 남긴 채, 1887년 어느 무도회에 참석하였다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음악가로 사는 삶이 짧고, 남긴 작품의 수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로딘은 발라키레프,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르그스키, 큐이와 함께 러시아 5인조(The Mighty Handful)로 불린다. 러시아 5인조는 1860-70년대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약한 러시아의 클래식 작곡가 5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그들은 서유럽식 음악이 지배하는 음악 분야에서 러시아 색채가 짙은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을 발전시키는 데 전념하였고, 결국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민악파, 즉 러시아의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그룹이 되었다. 화학과 의학을 전공하여 대학교수로 탄탄하게 경력을 쌓았던 보로딘에게 음악은 어떤 존재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음악가로서의 제 2의 삶은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은 강한 서정성을 보이며 복잡하기보다는 심플하고 낙천적이며, 섬세한 리듬과 선율로 청중을 사로잡는 대단한 능력을 갖췄다. 무소르크스키는 피아노 음악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관현악곡에 집중하였다면, 보로딘의 대표작은 실내악곡에 있다. 그의 현악 4중주 2곡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보로딘 현악 4중주 2번 D 장조는 지금도 대중들에게 사랑받아 현악 4중주의 메인 레퍼토어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주말엔 보로딘의 현악 4중주를 들으며 6월의 아름다운 날씨와 풍경을 만끽해 보면 어떨까? 이영은/첼리스트

201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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